:::벨에스엠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작성일 : 12-12-03 18:38
82세 주방장이 40년 째 끓여내는 한결같은 설렁탕 맛
 글쓴이 : 안운현
조회 : 1,790  
   http://food.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29/2012112902114.htm… [548]
서울역 북쪽 건너편의 <중림장>은 40년 된 설렁탕 집이다. 모서리가 닳아빠진 의자, 설렁탕 뚝배기 놓이는 자리가 반들반들한 식탁이 이 집의 연륜을 말없이 증언해준다. 지금의 자리에 이 집 주인장 안영자(82) 할머니가 처음 설렁탕 집을 연 것은 1972년이다. 안씨는 설렁탕을 잘 만든다는 기술자를 수소문 끝에 고용했다. 그의 솜씨는 역시 뛰어났다. 그러나 새로 문을 연 <중림장>의 설렁탕 맛은 훌륭했지만 주방장의 성품은 그렇지 못했나 보다. 툭하면 도마 위에 식칼을 꽂고 시위를 하는 주방장과 함께 계속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씨, 성깔 사나운 주방장 내보내고 40년 째 주방 지켜

한 달 만에 주방장을 내보내고 안영자 할머니가 주방을 맡았다. 이때 마흔 둘 나이에 주방에 들어간 안 할머니는 지금까지 40년 째 이 집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한 달간 전직 주방장의 조리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본 것이 안씨가 배운 조리 학습의 전부였다. 그런데 오히려 손님들에게 전보다 설렁탕 맛이 더 좋아졌다는 평을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직 주방장은 남의 일을 했고, 안씨는 내 집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주방장은 손님이 먹거나 말거나, 맛이 있거나 없거나 손에 익은 기술로 설렁탕을 만들었다.

 
그러나 주인 안씨는 갖은 정성을 다했다. 손님이 맛없다고 할까 봐, 그 전 주방장보다 솜씨가 못 하다고 할까 봐 전보다 비싸고 좋은 고기를 들여왔다. 양도 푸짐하게 넣고 국물도 신경을 많이 썼다. 김치도 최선을 대해 맛을 냈다. 주방장이 조리할 때보다 오히려 손님이 점점 더 늘어났다.

맛있는 설렁탕 소문은 주변으로 퍼졌다. 중림동에는 당시 관공서가 많았다. 수산청, 관세청, 수로국, 교통부, 철도청 등 여러 정부 부처나 기관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여기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이 집의 단골이 되었다.

한 그릇 설렁탕의 평등이 실현되는 ‘탕평(湯平)지대’

한 때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고문이 한집 살림을 했던 통일민주당 당사가 인근에 있었다. 당내에서 상근자들에게 식권을 나눠주면 대부분 <중림장>에 와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남산의 안기부에서도 큰 통을 가지고 와서 한꺼번에 50인분 정도씩 사가곤 했다고 한다. 안씨가 밤새 끓인 국물을 정치적 이해관계가 상반된 사람들끼리 나눠먹은 셈이다. 설렁탕에는 여도 야도, 보수도 진보도 없었다. 오직 구수하고 맛있는 이 땅의 고기와 국물이 지친 몸과 마음들을 추슬러주었다.

그런가 하면 인근에 있던 경찰청의 수장인 경찰청장도 가끔씩 이 집을 찾았다. 청장뿐 아니라 간부나 일반 경찰들도 이 집 설렁탕을 즐겨먹었다. 그런데 서울역 주변의 어깨들 역시 이 집의 단골이었다. 설렁탕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조폭의 어색한 조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곤 하였던 것이다.



 <중림장> 설렁탕 맛의 소문은 비교적 널리 퍼졌던 모양이다. 점심시간이면 멀리 삼성 본관과 대우빌딩의 월급쟁이들도 서둘러 염천교를 건너 이 집까지 찾아왔다. 그러니 가까운 곳의 대기업체 사장과 회장들의 발걸음이 잦았을 것은 불문가지. 문제는 사장이나 회장이 식사를 하러 오면 일반 직원들이 불편하고 어려워해서 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안영자 할머니는 높은 사람들이 오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무 자주 오시지는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안 할머니의 설렁탕은 평등했다. 지위가 높거나 특별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맛있지도 않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고 해서 층하를 두지도 않았다. 회장님도 말단 사원도, 경찰청장도 조폭도, 야당 당원도 안기부 요원도 다 똑 같은 고기와 국물을 먹고 마셨다. 밖에서의 직위와 맡은 일이 무엇이건 간에 이 집 안에서는 누구나 다 같이 한 그릇의 설렁탕을 앞에 놓고 행복한 식사를 하는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설렁탕으로써 평등한 ‘탕평(湯平)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오랜 세월 쌓은 주인과 고객의 끈끈하고 구수한 관계

<중림장> 설렁탕 값은 6000원이다. 5, 6년 전 가격 그대로다. 그 사이에 소고기, 대파, 배추 가격은 몇 배씩 뛰었다. 여기에 카드로 결제하는 손님이 다수여서 예전엔 없던 카드수수료까지 물어야 한다. 설렁탕 값이 안팎곱사등이 신세가 되었지만 올리지 않았다. 아니, 올리지 못했다. 찾아오는 고객의 대부분이 단골 손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형편이 넉넉지 않은 단골 손님이 적지 않다 보니 차마 올릴 수가 없었다.

특히 안 할머니의 택시기사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설렁탕 값을 올리지 못하게 만드는 고객층 가운데 택시기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안씨에 따르면 설렁탕을 1000원만 올려도 이들에겐 큰 타격이 된다고 한다. 물통에 식수도 제공하고, 잔돈도 바꿔주고, 커피도 한 잔씩 마시고 가도록 배려해준다. 게다가 남모르게 고기도 한 두 점 더 얹어준다. 오랜 세월 <중림장>을 이용해준 그들에 대한 의리와 정리의 표시다.
사실 이 집에선 10년 단골은 명함도 못 내민다.

한 번은 한참 바쁜 점심시간에 어느 손님이 차례를 기다리다가 짜증을 냈다. 큰 소리로 ‘내가 이 집 10년 단골인데 빈 자리 하나쯤 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항의를 했다. 그러자 기다리던 사람들과 식사 하던 손님들이 일시에 그 사람에게 냉소적인 눈길을 보내면서 수군거렸다.

“쳇, 2, 3십 년 단골인 나도 여태 기다렸다가 먹고 있는데….”

24시간 고아낸 육수에 월등한 김치 맛, 우리나라 설렁탕의 표준

이제 식당운영은 두 아들이 맡고 있다. 그러나 안영자 할머니는 여전히 아침 9시에 주방으로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안 씨는 ‘6000원짜리 설렁탕이 뭐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면 오해란다. 40년 동안 한결 같은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 뭐냐고 했더니 딴 게 없단다. 그저 좋은 재료로 정성껏 음식을 만드는 것일 뿐 특별할 게 없다고 한다. 역시 우문에 현답이었다.

양질의 사골을 24시간 고아내 국물로 쓴다. 이 과정에서 기름은 깔끔하게 걷어낸다. 예전에는 이 기름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왔다고 한다. 매일 오후 2시에 안 할머니가 전날부터 끓인 국물을 갈무리해놓고 다음날 쓸 새 국물을 앉힌다.

기름기가 없는 진한 국물은 담백하고 깔끔하다. 여기에 삶은 소면과 수육을 넣어 내온다. 파를 듬뿍 넣고 후추를 뿌린 뒤 소면과 함께 먹는 맛은 대한민국 설렁탕의 표준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냥 설렁탕(6000원)이 있고,  (특) 설렁탕(8000원)이 있다. 크게 다른 것은 없다. ‘특’은 고기가 좀 더 들어가고 공기밥을 따로 내간다. 웬만한 사람은 굳이 ‘특’으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의 양이 나온다.

아삭하게 잘 익어 맛이 들대로 든 이 집 김치와 큼지막한 깍두기는 이미 정평이 나있다. 물론 안할머니의 40년 내공이 반영된 맛이다. 식성에 따라 넉넉히 주는 김치와 김치 국물을 육수에 넣어 얼큰하게 먹기도 한다. 국수와 김치에 고기 한 점과 국수를 함께 먹으면 고소한 고기, 부드러운 면발, 새콤한 김치 맛이 기가 막히게 썩 잘 어울린다. 한 술 두 술 떠먹을 때마다 느껴지는 또 다른 맛의 정체, 그게 뭔지 몰랐는데 다 먹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식재료가 아니라 40년이라는 세월의 맛이었음을….

<중림장> 서울 중구 중림동, 02-392-7743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