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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2-11 13:23
감칠맛나는 겨울철 대구탕
 글쓴이 : 안운현
조회 : 1,655  
   http://media.daum.net/life/food/list/newsview?newsId=20121210093727392… [544]
삼각지에 가수 배호만 가고 없는 것은 아니다. 삼각지의 상징처럼 돼 있는 로터리(입체교차로)도 철거된 지 오래다. 하지만 배호는 그 근처에 노래비로 남아 여전히 '돌아가는 삼각지'의 한 구절을 되뇐다. 이미 건강이 망가진 채로, 병색이 완연한 목소리로 쥐어짜듯 부르는 삼각지의 애수는 이제 전설이다.

삼각지는 다른 면으로 또 다른 전설이다. 서울의 오랜 미식가들에게 말이다. 서울의 구도시의 어지간한 동네는 맛집이 있게 마련인데 삼각지는 좀 양상이 다르다. 열광의 도가 좀 센 곳이라고 할까.

우선 떠오르는 집을 보면, 삼각정이다. 쇳밥 먹는 철공소 노동자들 단골이 많은데, 모서리 고기로 유명하다. 돼지 목 안쪽의 항정살 부위인데 쫄깃한 식감이 기막히다. 정재계 거물들이 자주 찾는 소 내장 요리 전문의 평양집도 있다. 좀 먹었다 하면 계산이 꽤 나온다. 오래된 중국요리의 한 전형을 보여주던 명화원도 이 근처에 자리한다. 연예인 출입이 잦은 봉산집은 차돌박이가 유명하다. 여기에다 원대구탕을 빼놓으면 섭섭해 할 사람이 많다. 지금은 값이 좀 올랐지만, 한때 백반 수준의 값에 대구탕을 바글바글 끓여서 먹을 수 있는 집으로 인기가 치솟았다. 원탁에 뜨끈한 탕을 올리고, 옆 탁자 손님들과 등을 거의 맞붙인 채 땀 흘려가며 먹던 대구탕 맛은 서울 직장인들의 한 세기를 받쳐주던 추억이 됐다. 지금도 성업하고 있는데, 여전한 미나리 추가 인심과 아삭한 아가미김치 맛이 제일이다.

아마도 전국 재래시장 중 요즘 가장 활기찬 곳은 광장시장이 아닐까 싶다. 없는 게 없는 소매시장인데, 주로 먹자골목의 경기로 지탱하는 듯하다. 근래 이처럼 환한 불빛으로 가득 찬 재래시장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아바이순대와 빈대떡, 김밥 등속이 워낙 유명해져서 일종의 관광코스가 됐다. 동대문과 종로 일대 직장인들이 찬 바람 불면 찾는 집이 바로 시장 내 대구탕집이다. 이리를 넉넉히 넣은 대구탕에 입천장을 벗겨가며 먹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차가운 소주 한잔을 털어 넣으면, 삭풍을 견뎌낼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대구는 그 거대한 입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오죽하면 '뽈살(볼살)'이라는 요리가 있겠는가. 머리가 크니 얼굴도 크고 볼도 큰 격이다. 실제로 해체해서 요리하면 머리가 절반이다. 대구는 '바다의 소'라고 부른다.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아가미와 창자는 젓을 담근다. 큰놈은 주둥이의 젤라틴처럼 쫄깃한 부위를 뜯어 먹는 재미가 있다. 알은 말리고, 수놈에게서 나오는 이리는 탕을 끓인다. 서양에서는 이리를 우유와 함께 곱게 갈아 제 살코기 요리의 소스로 쓴다. 대구 필레를 저며 굽고, 이리 소스를 뿌리는 것이다. 일본 음식 중에서 오야코동이라는 덮밥이 있다. 닭과 달걀을 같이 요리해서 밥에 덮는다는 뜻인데, 참 기묘한 울림을 준다. 그 요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어버이의 살에 맛을 더하는 소스로 쓰이는 절반의 생명이라니.

대구 맛이 좋은 이유는 먹이에 있다. 대구는 그 큰 입만큼이나 엄청난 대식가이고 탐식가다. 닥치는 대로 먹는데 새우와 오징어, 청어, 꽁치 같은 맛있는 생선을 주로 먹는다. 대구 살에서 깊은 감칠맛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심지어 자기 종족의 알까지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의 맛은 곧 먹이의 맛이다. 남방 생선들이 맛이 여린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북반구에 비해 바다에 유기물이 적어서 생선 살에 달차근하고 진한 맛이 깃들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대구는 겨울 음식인 듯하지만, 실은 사철 생선이다. 한반도 연안에서 늘 어획된다. 북쪽의 차가운 바다에서 놀다가 산란철은 12월부터 2월까지인데, 이때 남해안에 집중적으로 회귀한다. 겨울의 진객이 되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거제도와 진해, 마산 일대에는 대구 장이 크게 설 것이다. 대구는 주로 진해만으로 들어오는데, 그 길목이 거제여서 외포항의 대구 축제는 꽤 유명하다.

원래 대구는 한반도 남쪽에서 흔한 생선이었다. 대구를 사서 갈무리하는 걸 '대구김장'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1970년대 이후에 사라져버린 풍습인데, 당시의 문헌을 보면 장터에 산처럼 쌓여 있는 대구를 손수레로 실어 날라 김장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김치를 담글 때도 넣고 따로 말려 한겨울 음식으로도 먹었다. 내장을 빼고 젓가락을 끼워 통째로 말린 건 통대구, 알까지 말리면 약대구라고 불렀다.

원래 생선은 생물보다 말렸을 때 맛이 좋아진다. 수분도 빠지고, 살 속에서 효소 작용이 일어나 감칠맛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북어처럼 바싹 말려서 봄까지 두고 먹기도 했다. 포를 만들어 술안주로 쓴 건 물론이다. 대구포는 대구의 씨가 마르던 1980년대 이후부터 시중에서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시중에선 대구가 아닌 생선으로 만든 것이 버젓이 대구포라고 유통될 뿐이다. 진짜 대구포는 입에 넣으면 탁월한 감칠맛으로 진하게 녹아든다.

대구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생선이다. 맛이 좋은 데다 흔하기까지 했다. 화수분이었다. 그러나 그 가치가 알려지면서 대구어장을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200해리 경제수역은 바로 대구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이슬란드가 자국 200해리 경계 안에서 영국의 대구 어로를 금하면서 포격전까지 벌어졌다.

대구는 인류의 오랜 식량이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바이킹인데, 바로 대구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대구를 말려서 오랜 항해의 식량으로 썼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대구는 유럽인에게 생선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영국은 자국 음식의 아이콘으로 대구를 내세운다. 피시 앤 칩스가 그것이다. 바삭하게 튀겨 맥주 안주로 하면 그만인 촉촉한 대구살이다. 이것은 특제 반죽이 필요하다. 반죽에 우유와 버터를 넣어 고소함을 살린다. 에일 맥주에 곁들이면 이른바 '마른 논'이 된다. 마른 논에 물 대는 것처럼 한없이 맥주가 들어간다는 의미다.

영국 아래쪽 지중해 국가는 바칼라(바칼라우)라는 요리에 대구를 이용한다. 바로 염장대구다. 북해와 대서양에서 잡은 대구가 소금에 절여져 남부 유럽으로 이동했다. 마치 동해안의 고등어가 내륙의 간고등어로 변한 것처럼.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의 시장에 가면 이 염장대구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십수 년 전에는 값이 비싸지 않았는데, 요즘은 쇠고기값만큼 올랐다.

염장대구는 물이나 우유에 넣어 소금기를 빼고 요리한다. 회로 먹기도 하고, 갈아서 소스로 쓰거나 스테이크를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팔방미인이다. 필자 생각에 가장 맛있는 건 다진 바칼라 만테카토라는 요리다. 절구에 넣어 살점을 쿵쿵 찧는다. 마늘과 올리브유, 감자 삶은 것을 섞어 단자를 만든 후 소금, 후추 간해 먹으면 살살 녹는다. 화이트와인을 한잔 곁들이면 최상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인 나의 대구 로망은 여전히 진해나 마산 같은 곳에서 먹는 방식이다.

대구 내장을 빼고 찬 바람 부는 바닷가에 널어 말린다. 하루 이틀 삐들삐들하게 마르면 겉은 조금 딱딱하지만 속은 여전히 촉촉한 상태다. 이걸 저며서 초고추장에 찍거나 김장김치에 싼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잘 거른 술 한잔을 곁들이면 이 길고 긴 겨울을 잘 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대로 가까운 대구탕집에서 속을 풀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광장시장 내 은성횟집 02-2267-6813 ·삼각지 원대구탕 02-797-4488

[박찬일 요리연구가 / 사진 : 박정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85호(12.12.05~12.11 일자) 기사입니다]